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비류수 전투 (문단 편집) === 한국 측 기록 === >二十年, 秋八月, 魏遣幽州刺史毋丘儉, 將萬人, 出玄菟來侵. 王將歩騎二萬人, 逆戰於沸流水上, 敗之, 斬首三千餘級. 又引兵再戰於梁貊之谷, 又敗之, 斬獲三千餘人. 王謂諸將曰, "魏之大兵, 反不如我之小兵, 毋丘儉者, 魏之名將, 今日命在我掌握之中乎." 乃領鐵騎五千, 進而擊之, 儉爲方陣, 決死而戰, 我軍大潰, 死者一萬八千餘人. 王以一千餘騎, 奔鴨淥原. >동천왕 20년(246년) 가을 8월에 [[위(삼국시대)|위나라]]가 유주자사 [[관구검]]을 보내 10,000명을 거느리고 [[현도군|현도]]로부터 침략해왔다. [[동천왕|왕]]이 보병과 기병 20,000명을 거느리고 비류수(沸流水)에서 싸워 패배시키니 베어버린 머리가 3,000여 급(級)이었다. 또 병력을 이끌고 다시 양맥(梁貊)의 골짜기에서 싸워 또 패배시켰는데 목을 베거나 사로잡은 것이 3,000여 명이었다. 왕이 여러 장수들에게 말하기를, "위의 대병력이 도리어 우리의 적은 병력보다 못하고, 관구검이란 자는 위의 명장이나 오늘은 그의 목숨이 내 손 안에 있구나."라고 하고, 철갑기병 5,000명을 거느리고 나아가 공격하였다. 관구검이 방진(方陣)을 치고 결사적으로 싸우므로 우리 군사가 크게 궤멸하여 죽은 자가 18,000여 명이었다. 왕이 기병 1,000여 기(騎)를 거느리고 압록원(鴨淥原)으로 달아났다. >----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동천왕]] 20년([[246년]]) 8월조 ---- >秋八月, 魏幽州刺史毋丘儉與樂浪大守劉茂·朔方大守王遵, 伐高句麗. 王乘虛, 遣左將眞忠, 襲取樂浪邊民, 茂聞之怒. 王恐見侵討, 還其民口. >가을 8월에 [[위(삼국시대)|위나라]] 유주자사 [[관구검]]이 [[낙랑군|낙랑]]태수 [[유무]], [[대방군|삭방]]태수 [[궁준|왕준]]과 함께 고구려를 쳤다. 왕이 빈틈을 타서 좌장(左將) 진충(眞忠)을 보내 낙랑의 변경 주민을 습격하여 빼앗으니 유무가 듣고 노하였다. 왕이 침략당할 것을 염려하여 그 주민들을 돌려주었다. >---- >《[[삼국사기]]》 〈백제 본기〉 [[고이왕]] 13년([[246년]]) 8월조 ---- >冬十月, 儉攻䧟丸都城, 屠之, 乃遣將軍王頎追王. 王奔南沃沮, 至于竹嶺, 軍士分散殆盡, 唯東部密友獨在側, 謂王曰, "今追兵甚迫, 勢不可脫. 臣請決死而禦之, 王可遯矣." 遂募死士, 與之赴敵力戰. 王間行脫而去, 依山谷聚散卒自衞, 謂曰, "若有能取密友者, 厚賞之." 下部劉屋句前對曰, “臣試往焉.” 遂於戰地, 見密友伏地, 乃負而至. 王枕之以股, 久而乃蘇. >겨울 10월에 [[관구검]]이 [[환도성]]을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성 안을 도륙하였으며 장군 [[왕기(조위)|왕기]]를 보내 왕을 추격하였다. 왕이 남[[옥저]]로 달아나 [[황초령|죽령]](竹嶺)에 이르렀는데, 군사들은 흩어져 거의 다 없어지고, 오직 동부(東部)의 [[밀우]]만이 홀로 옆을 지키고 있다가 왕에게 말하기를, "지금 추격해오는 적병이 가까이 닥쳐오니, 이 형세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청컨대 신이 결사적으로 막을 것이니 왕께서는 달아나소서."라고 하였다. 마침내 결사대를 모아 그들과 함께 적진으로 가서 힘껏 싸웠다. 왕이 샛길로 달아나 산골짜기에 의지하여 흩어진 군졸을 모아 스스로 방비하면서 말하기를, "밀우를 데려오는 사람에게는 후하게 상을 주겠다."라고 하였다. 하부(下部)의 [[유옥구]]가 앞으로 나아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신이 가보겠습니다."라고 하였다. 마침내 전투가 벌어진 곳에 밀우가 땅에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곧 업고 돌아왔다. 왕이 그를 무릎에 눕혔더니 한참 만에 깨어났다. > >王間行轉輾, 至南沃沮, 魏軍追不止. 王計窮勢屈, 不知所爲, 東部人紐由進曰, "勢甚危迫, 不可徒死. 臣有愚計, 請以飮食牲犒魏軍, 因伺隙, 刺殺彼將. 若臣計得成, 則王可奮擊, 決勝矣." 王曰, "諾." >왕이 샛길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남[[옥저]]에 이르렀으나 위군(魏軍)은 추격을 멈추지 않았다. 왕이 계책이 궁하고 기세가 꺾이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동부 사람 [[유유(고구려)|유유]]가 나서서 말하기를, "형세가 매우 위태롭고 급박하나 헛되이 죽을 수는 없습니다. 신에게 어리석은 계략이 있습니다. 청컨대 음식을 가지고 가서 위나라 군사에게 대접하면서 틈을 엿보아 저들의 장수를 찔러 죽이겠습니다. 만일 신의 계략이 성공하면, 왕께서는 힘껏 공격하여 반드시 승리를 거두소서."라고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그렇게 하겠다."라고 하였다. > >紐由入魏軍詐降曰, "寡君獲罪於大國, 逃至海濱, 措躬無地, 將以請降於陣前, 歸死司寇, 先遣小臣, 致不腆之物, 爲從者羞." 魏將聞之, 將受其降. 紐由隱刀食器, 進前拔刀, 刺魏將胷, 與之俱死, 魏軍遂亂. 王分軍爲三道, 急擊之, 魏軍擾亂, 不能陳, 遂自樂浪而退. >유유가 위군에 들어가 거짓으로 항복하여 말하기를, "[[동천왕|우리 임금]]이 [[위(삼국시대)|큰 나라]]에 죄를 짓고 달아나 바닷가에 이르렀으나 몸 둘 곳이 없습니다. 장차 귀국 진영 앞에서 항복을 청하고 죽음을 사구(司寇)에게 맡기려 하는데, 먼저 소신(小臣)을 보내 변변치 못한 물건이라도 드려 군졸들의 음식거리나 되고자 합니다."라고 하였다. 위나라의 장수가 이 말을 듣고 그 항복을 받으려 하였다. 유유가 식기에 칼을 감추고 앞으로 나아가 칼을 빼서 위나라 장수의 가슴을 찌르고 그와 함께 죽으니, 위군이 마침내 혼란해졌다. 왕이 군사를 세 길로 나누어 빠르게 이들을 공격하니, 위군이 어지러워져서 싸우지 못하고 드디어 [[낙랑군|낙랑]]에서 퇴각하였다. > >王復國論功, 以密友·紐由爲第一. 賜密友巨谷·靑木谷, 賜屋句鴨淥·杜訥河原, 以爲食邑. 追贈紐由爲九使者, 又以其子多優爲大使者. 是役也, 魏將到肅愼南界, 刻石紀㓛, 又到丸都山, 銘不耐城而歸. >왕이 나라를 회복하고 공을 논하는데, [[밀우]]와 [[유유(고구려)|유유]]를 으뜸으로 삼았다. 밀우에게 거곡(巨谷)과 청목곡(靑木谷)을 주고, [[유옥구]]에게 압록원(鴨淥原)과 두눌하원(杜訥河原)을 주어 식읍으로 삼게 했다. 유유를 추증하여 구사자(九使者)로 삼고, 그의 아들 다우(多優)를 [[사자(동음이의어)#s-3.1|대사자]](大使者)로 삼았다. 이 싸움에서 위나라의 장수가 [[숙신]]의 남쪽 경계에 이르러 그 공을 돌에 새기고, 또 환도산(丸都山)에 이르러 불내성(不耐城)을 새기고 돌아갔다. > >初其臣得來, 見王侵叛中國, 數諫, 王不從. 得來嘆曰, "立見此地, 將生蓬蒿." 遂不食而死. 毋丘儉令諸軍, 不壞其墓, 不伐其樹, 得其妻子, 皆放遣之. 括地志云, "不耐城即國內城也. 城累石爲之." 此即丸都山與國內城相接. 梁書以, "司馬懿討公孫淵, 王遣將襲西安平, 毋丘儉來侵." 通鑑以, "得來諫王, 爲王位宮時事." 誤也. >처음에 신하 득래(得來)는 왕이 중국을 침략하고 배반하는 것을 보고 여러 차례 간언하였으나 왕이 따르지 않았다. 득래가 탄식하며 말하기를, "이 땅이 (폐허가 되어) 장차 쑥이 자라나는 꼴을 보겠구나."라고 하고 마침내 음식을 먹지 않고 죽었다. [[관구검]]이 모든 군사들에게 명령하여 그의 무덤을 허물지 말고, 주변의 나무를 베지 못하게 하였으며, 그의 처와 자식을 포로로 잡았으나 모두 놓아서 보내주었다. 《괄지지(括地志)》에는 "불내성이 곧 [[국내성]]이다. 성을 돌로 쌓아 만들었다."라고 하였다. 이런즉 환도산과 국내성이 서로 가까이 접하였을 것이다. 《[[양서(역사책)|양서]]》에는 "[[사마의]]가 공손연을 토벌하자 왕이 장수를 보내 서안평(西安平)을 습격하였는데 관구검이 침략해왔다."라고 하였다. 《[[자치통감]]》에는 "득래가 왕에게 시정을 건의한 것은 왕 위궁(位宮) 때의 일이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잘못이다.[* 여기서 [[김부식]]은 《삼국사기》 편찬 당시 위궁(位宮)을 [[산상왕]]의 이름으로 오해하여 양서의 기록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였는데, 현대 사학계는 위궁이 [[동천왕]]의 이름이 맞았을 것으로 보는 추세이다.] >----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동천왕]] 20년([[246년]]) 10월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